•  
  •  
  •  
  •  
  •  
  •  
  •  
  •  
  •  
  •  
r15 vs r16
......
171171
172172그러나 이 최악의 날은 동시에 전투 전체의 전환점이 되었다. 격침 보고를 받은 베렌하르트는 그날 정오, 전 함대에 평문에 가까운 짧은 전문을 타전했다. "독일 기함을 격침할 때까지 함대는 귀항하지 않는다." 통신 규범상 이례적인 이 전문은 의도된 것이었다. 적도 들으라고 보낸 선언이자, 충격에 빠진 함대와 국민을 향한 호소였다. 실제로 이 전문과 함께 랜드 내해와 대서양의 모든 가용 전력, 심지어 호송 임무 중이던 호위 전함들까지 차출되어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그 목표물의 함교에서 뤼첸스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눈부신 전과를 안고 작전을 계속할 것인가, 새는 연료 탱크를 안고 회항할 것인가. 그의 결정과 함께, 해전사에 남을 사흘이 시작된다.
173173=== 사흘간의 추격전 (1941년 5월 24일~27일) ===
174==== 5/24 ====
17506시 03분, 리퍼블릭(RNS Republic)의 함수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직후부터 이날 하루는 양측 모두에게 결정의 연속이었다.
176
177첫 결정은 승자의 함교에서 내려졌다. 보탄(KMS Wotan)의 함장은 손상을 입고 연막 속으로 이탈하는 레졸루트(RNS Resolute)를 가리키며 추격 섬멸을 건의했다. 상대는 취역 두 달의 신예함으로 주포 고장과 사격 통제 손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여기서 격침하면 루이나 해군의 신예 전함 전력을 통째로 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귄터 뤼첸스]]는 5분간의 침묵 끝에 이를 기각했다. 임무는 통상파괴이지 함대결전이 아니며, 교전 중 함수에 얻어맞은 명중탄 1발이 연료 탱크를 찢어 중유 1,000톤이 이미 바다에 버려진 상태였다. 08시경 뤼첸스는 참모진에 작전 중단과 프랑스 회항 방침을 통보했다. 반발이 없지 않았다. 포술장은 "해군 역사상 최대의 전과를 눈앞에 두고 등을 돌리는 것"이라 항의했으나, 뤼첸스의 답은 겨우내 그를 지배해 온 원칙의 반복이었다. "구멍 난 배로는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배에는 지금 구멍이 나 있다."
178
179같은 시각 루이나 측에서는 정반대 방향의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다. 리퍼블릭의 침몰 보고,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생존자 3명'이라는 신호를 접수한 함대사령부는 한때 침묵에 잠겼다고 전해진다. 그 침묵을 깬 것이 정오에 [[알렉스 베렌하르트]]가 전 함대에 타전한 전문이었다. "독일 기함을 격침할 때까지 함대는 귀항하지 않는다." 암호화를 최소화한 이례적인 평문 전송으로, 적도 들으라고 보낸 선언이었다. 전문과 동시에 함대의 재배치가 시작되었다. 리버티(RNS Liberty)를 기함으로 하는 본대가 남서로 침로를 꺾었고, 지브롤터 방면에서 항모 페레그린(RNS Peregrine)을 포함한 별동대가 북상을 개시했으며, 호송 임무에 붙어 있던 구식 전함들까지 선단에서 떼어내 예상 항로의 길목마다 배치되었다. 이날 하루 동안 보탄 한 척을 향해 재배치된 연합군 함정은 전함·순양전함 5척, 항모 2척, 순양함 11척, 구축함 21척에 달했다.
180
181추격의 실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두 척의 중순양함 덕분이었다. 새벽의 참극을 처음부터 지켜본 페어헤이븐(RNS Fairhaven)과 스톤헤이븐(RNS Stonehaven)은 리퍼블릭 침몰 후에도 이탈하지 않고, 신형 탐지 장비의 유효 거리 끝자락에 매달려 보탄의 뒤를 밟았다. 안개와 스콜이 번갈아 시야를 지우는 해역에서 두 순양함은 30분 간격으로 위치 보고를 중계했고, 이 보고선이 이날 연합군 전체의 눈 역할을 했다. 보탄 측도 이를 모르지 않아, 오후 들어 두 차례 스콜을 방패 삼아 반전해 주포 일제사를 퍼부었으나, 순양함들은 연막을 치고 사거리 밖으로 물러났다가 스콜이 지나가면 다시 수평선 위에 마스트를 세웠다. 독일 승조원들 사이에서 두 순양함에 '그림자(Schatten)'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이날이다.
182
183오후 늦게는 이날의 마지막 교전이 벌어졌다. 응급 수리를 마친 레졸루트가 순양함들의 보고선을 따라잡아 원거리에서 재차 포문을 연 것이다. 젊은 함장이 독단에 가깝게 감행한 이 재교전은 명중탄 없이 30분 만에 끝났고, 주포 고장이 재발한 레졸루트는 결국 추격선에서 이탈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전과는 없었으나 의미가 없지도 않았다. 이 교전 동안 회피 기동을 강요당한 보탄의 속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졌고, 무엇보다 함수 파공부에 해수가 추가로 밀려들며 침수 구획이 넓어져, 최대 속력이 28노트로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사흘 뒤의 산수를 결정짓는 2노트였다.
184
185해가 진 뒤, 뤼첸스는 이날의 마지막 수를 두었다. 22시경 스콜 지대에 진입하는 순간 보탄이 갑자기 감속하며 반전, 추적 순양함들을 향해 위협 사격을 가했고, 그 소란의 그늘에서 무상인 중순양함 롤란트(KMS Roland)가 조용히 전대를 이탈해 남쪽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롤란트를 단독 통상파괴에 내보내고 추격의 시선을 보탄 한 척에 모으는, 계획된 분리 기동이었다. 페어헤이븐의 탐지 요원들은 표적이 하나로 줄어든 것을 몇 시간 뒤에야 알아차렸다. 이로써 24일 자정, 무대 위에는 기름띠를 끌며 프랑스로 향하는 손상 전함 한 척과, 대양 전역에서 그 한 점을 향해 모여드는 함대들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 추격의 실은, 다음 날 아침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끊어지게 된다.
186==== 5/25 ====
187날짜가 바뀐 직후, 이번 추격전 최초의 항공 공격이 감행되었다. 본대에 앞서 달리던 항모 케스트럴(RNS Kestrel)이 보탄(KMS Wotan)과의 거리를 뇌격기의 행동반경 안까지 좁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00시 30분, 뇌격기 9기가 어둠과 스콜 속으로 발진했다. 승조원 태반이 실전 첫 출격인 데다, 시속 130km 남짓의 구식 기체로 야간 대양 항법을 해야 하는 무리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뇌격대는 탐지 장비를 갖춘 선도기의 유도로 표적을 찾아냈고, 대공포화가 하늘을 찢는 가운데 파도 위 20m까지 내려가 어뢰를 뿌렸다. 명중 1발. 그러나 어뢰는 함체 중앙의 주장갑대를 때렸고, 보탄이 입은 피해는 도장이 벗겨진 정도에 그쳤다. 다만 명중의 순간 급격한 회피 기동을 반복한 대가로 함수 파공부의 응급 방수 매트가 뜯겨 나가, 침수가 다시 시작되었다. 9기는 연료가 바닥난 채 전기 모두 귀함에 성공했는데, 훗날 케스트럴의 비행장은 이 밤을 "기적이 우리 편이었던 유일한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188
189그리고 세 시간 뒤, 기적은 편을 바꾸었다. 03시 06분, 보탄은 겨우내 갈고닦은 그 수법을 다시 꺼내 들었다. 추적하는 페어헤이븐(RNS Fairhaven)과 스톤헤이븐(RNS Stonehaven)이 지그재그 초계 기동의 바깥쪽 다리를 도는, 탐지 공백이 가장 길어지는 순간을 노려 우현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 변침한 것이다. 보탄은 추적자들의 후방을 가로질러 완전히 반대 반향으로 빠져나갔고, 04시 01분 페어헤이븐의 탐지 화면에서 표적 휘점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스콜에 의한 일시적 소실로 여겨졌으나, 두 시간의 수색에도 접촉은 회복되지 않았다. 06시, 란츠의 상황실 지도 위에서 보탄의 표지가 다시 '위치 불명'으로 바뀌었다. 겨울의 악몽, 두 달간 루이나를 마비시켰던 그 세 글자였다. 최악의 가정은 명확했다. 만약 보탄이 이대로 수리를 마치고 대서양 어딘가로 다시 사라진다면, 리퍼블릭(RNS Republic)의 1,400명은 아무 대가도 받아내지 못한 채 바다에 남겨지는 것이었다.
190
191포위망이 허공을 움킨 그 아침, 추격을 되살린 것은 다름 아닌 뤼첸스 본인이었다. 08시 52분, 보탄의 무전실은 본국 사령부를 향해 30분에 걸친 장문의 전황 보고를 송신하기 시작했다. 리퍼블릭 격침의 상보, 자함의 손상 목록, 탐지 장비 대응 전훈까지 담긴 상세한 보고였다. 문제는 그 송신이 이루어진 이유였다. 뤼첸스는 새벽의 이탈 기동이 성공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지난 24시간 내내 탐지 장비에 물려 있던 경험 탓에 그는 여전히 추적당하고 있다고 확신했고, '어차피 위치가 노출된 이상' 무선 침묵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겨우내 란츠의 상황실이 독일 함대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해 둔 무선 습관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나쁜 형태로 도진 셈이었다. 대서양 연안에 늘어선 방향 탐지국들이 일제히 이 송신의 방위를 물었고, 09시 30분경 상황실의 지도 위에는 교차 방위선들이 만드는 좁은 다각형이 그려졌다. 보탄은 살아 있었고, 남동쪽, 즉 프랑스로 향하고 있었다.
192
193그러나 이날의 연합군은 이 선물을 받아 들고도 반나절을 헛되이 태웠다. 방위 측정 결과가 본대 기함 리버티(RNS Liberty)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도상 작업의 착오가 겹치며, 참모진이 교차점을 실제보다 수백 킬로미터 북쪽으로 잘못 산출한 것이다. 보탄이 북방 항로로 귀환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알렉스 베렌하르트]]의 본대는 07시간 동안 정반대에 가까운 북동 침로로 항주했다. 오후 늦게 상황실의 재검산과 추가 방수(傍受)가 착오를 바로잡았을 때, 본대와 보탄의 거리는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벌어져 있었다. 이 시점에서 산수는 잔인해졌다. 보탄의 침로와 28노트의 속력을 대입하면, 27일 새벽에는 독일 공군의 엄호권과 유보트 초계선 안으로 들어간다. 본대의 전함들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 그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남쪽에서 북상 중인 별동대, 그중에서도 항모 페레그린(RNS Peregrine)의 함재기뿐이었다. 베렌하르트가 이날 밤 일지에 남긴 문장은 한 줄이었다. "이제 함대의 운명이 복엽기 조종사들의 어깨 위에 있다."
194
195한편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서, 보탄의 함내는 기묘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뤼첸스의 쉰두 번째 생일이었다. 아침에는 본국의 총통 명의로 축전이 도착했고, 승조원들은 리퍼블릭 격침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사령관의 생일을 자축했다. 그러나 정오, 함내 방송에 직접 나선 뤼첸스의 연설은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적 함대 전체가 자신들을 쫓고 있으며, 앞으로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승리냐 죽음이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직한 상황 인식이었으나 병사들이 듣기에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고, 생존자들은 이 연설 이후 함내의 공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고 입을 모은다. 함장이 뒤늦게 갑판을 돌며 "프랑스까지는 하루 반이면 닿는다"고 다독여야 했을 정도였다. 그날 밤 보탄은 등화를 완전히 지운 채 남동으로 달렸고, 수평선 어디에도 추적자의 그림자는 없었다. 프랑스까지 남은 거리는 약 700해리. 이대로라면, 뤼첸스는 이번에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196==== 5/26 ====
197운명의 재발견은 하늘에서 왔다. 10시 10분, 서부 항공관구에서 발진해 10시간째 초계 중이던 비행정 1기가 구름 사이로 내려선 순간, 조종사의 눈에 잿빛 바다 위의 검은 함영과 그 뒤로 길게 이어진 기름띠가 들어왔다. 확인을 위해 접근한 비행정은 곧바로 보탄(KMS Wotan)의 대공포화에 붙들려 동체에 파공을 얻은 채 구름 위로 도망쳐야 했으나, 타전은 이미 끝나 있었다. "전함 1척 발견." 31시간 만에 되찾은 접촉이었다. 위치를 도상에 옮긴 순간, 함대의 모든 참모가 같은 계산에 도달했다. 보탄은 예상보다 남쪽에 있었고, 프랑스까지 남은 거리와 속력으로 미루어 27일 아침이면 독일 공군의 엄호권에 진입한다. 본대의 전함들은 따라잡지 못한다. 남은 패는 단 하나, 보탄의 진로 앞쪽까지 북상해 있던 별동대의 항모 페레그린(RNS Peregrine)뿐이었다. 그 한 장의 패로 오늘 안에 보탄의 발을 묶지 못하면, 추격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198
199문제는 하늘과 바다의 상태였다. 이날 해역에는 폭풍에 가까운 북서풍이 불어, 페레그린의 비행갑판은 파도를 따라 15m씩 오르내리고 있었다. 함수미가 솟구칠 때마다 갑판 끝이 물보라에 잠기는 상황에서의 발함과 착함은 그 자체로 목숨을 건 곡예였다. 그럼에도 14시 50분, 뇌격기 14기로 구성된 제1차 공격대가 뜯겨 나갈 듯한 갑판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 공격대는 이날 추격전 전체를 무위로 돌릴 뻔한 대실책을 저지른다. 저공의 비구름을 뚫고 내려온 조종사들이 탐지 장비의 휘점만 믿고 뇌격 침로에 들어갔는데, 그 표적은 보탄이 아니라 몇 시간 전 접촉 유지 임무로 단독 파견된 아군 경순양함 탤런(RNS Talon)이었던 것이다. 파견 사실이 페레그린의 비행대에 전달되지 않은 통신 계통의 구멍이 빚은 참사였다. 어뢰 11발이 아군을 향해 물살을 갈랐다. 탤런을 구한 것은 함장의 필사적인 회피 조함,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어뢰에 달린 신형 자기 신관의 결함이었다. 절반이 착수 직후의 파도에 조기 폭발했고 나머지는 전타로 피해졌다. 탤런은 끝까지 대공 사격을 봉인한 채 신호등으로 피아 식별 신호만 반복해 깜빡였고,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조종사들은 저공으로 탤런의 마스트 옆을 스치며 날개를 흔드는 것으로 사죄를 대신했다.
200
201빈손으로 돌아온 조종사들이 격납고에서 마주한 것은 질책이 아니라 시계였다. 일몰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간 남짓. 정비사들은 전 기체의 어뢰에서 말썽 난 자기 신관을 뜯어내고 구식 접촉 신관으로 갈아 끼웠으며, 뇌격 심도도 낮춰 잡았다. 낮의 실패가 준 유일한 선물이라면, 실전과 같은 조건에서 신관 결함을 미리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19시 10분, 마지막 남은 가용기 15기가 다시 갑판을 박차고 올랐다. 조종사 태반이 낮의 오인 공격에 나갔던 그 얼굴들이었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의, 그리고 이 추격전의 마지막 발함이라는 것을.
202
20320시 47분, 제2차 공격대는 낮게 깔린 구름 밑으로 하나둘 미끄러져 내려와 보탄을 여러 방향에서 협격했다. 대공포화는 낮의 비행정을 쫓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로 하늘을 메웠고, 뇌격기들은 구름과 파도 사이의 좁은 틈을 곡예하듯 누비며 어뢰를 뿌렸다. 명중은 2발이었다. 1발은 또다시 함체 중앙의 주장갑대에 막혀 물기둥만 올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물고 늘어지던 1기가 투하한 다른 1발이, 마침 어뢰 회피를 위해 좌현 전타 중이던 보탄의 함미에 꽂혔다. 폭발은 조타 기관실을 덮쳤고, 타는 좌현 12도로 꺾인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함내의 잠수부들이 침수된 조타 기관실로 들어가 필사의 복구를 시도했으나 유압 계통은 응답하지 않았고, 양현 스크루의 회전차만으로 침로를 잡으려는 시도는 폭풍의 파도가 번번이 무산시켰다. 21시 15분, 보탄의 함수는 제 의지와 무관하게 북서쪽, 즉 추격해 오는 연합군 함대의 정면을 향해 돌아갔다. 4만 7천 톤의 전함이 프랑스를 코앞에 둔 채, 바람 부는 쪽으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204
205뤼첸스는 상황을 오래 오판하지 않았다. 21시 40분, 그는 본국 사령부에 짧은 전문을 보냈다. "함은 조종 불능. 최후의 포탄까지 싸우겠다." 사령부와 점령하 프랑스의 기지들이 밤새 던질 수 있는 모든 것, 유보트의 긴급 전개와 예인선 출항, 새벽의 공군 엄호를 약속했으나, 폭풍이 그 대부분을 종이 위의 약속으로 만들리라는 것은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22시를 넘기면서, 수평선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본대에서 앞서 파견된 구축함전대 5척이 도착한 것이다. 구축함들은 조타 불능으로 갈지자를 그리는 보탄의 주위를 에워쌌고, 자정 무렵부터 파상 뇌격을 개시했다. 보탄은 탐조등과 주포·부포의 맹사로 응수했다. 상처 입은 거함과 그 주위를 도는 다섯 척의 사냥개들, 폭풍의 밤바다 위에서 벌어진 이 소모전은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된다. 루이나 함대의 본대가 새벽의 처형장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여덟 시간이었다.
206==== 5/27 ====
207새벽, 폭풍은 여전했다. 밤새 구축함들의 뇌격은 단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다섯 척의 사냥개들이 밤새 앗아간 것은 보탄(KMS Wotan) 승조원들의 마지막 남은 잠과 기력이었다. 닷새째 이어진 전투 배치, 세 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대공·대수상 경보 속에서 병사들은 포좌와 통로 바닥에 쓰러진 채 짧은 혼절과 각성을 반복했고, 함내에는 구조도 탈출도 없으리라는 체념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새벽녘 함내 방송으로 전해진 소식, 즉 뤼첸스와 주요 장교들에 대한 기사철십자장 서훈 결정은 사기 진작을 위한 본국의 배려였으나, 한 생존자의 회고대로 그것은 "장례식의 조사처럼" 들렸다. 07시를 넘기며 비가 걷히기 시작했고, 시계가 열린 북서쪽 수평선 위로 두 개의 거대한 마스트가 떠올랐다. [[알렉스 베렌하르트]]의 리버티(RNS Liberty)와 아이언사이드(RNS Ironside)였다.
208
209베렌하르트는 밤사이 참모들의 야간 교전 건의를 물리치고 새벽까지 대기를 명령해 둔 터였다. "그 배는 이제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우리는 밝은 곳에서, 확실하게 끝낸다." 08시 47분, 아이언사이드의 16인치 주포가 먼저 포문을 열었고 1분 뒤 리버티가 뒤를 이었다. 보탄도 즉각 응사에 나서, 세 번째 일제사가 아이언사이드의 함수 양옆에 물기둥을 세우는 등 초반의 포술은 죽어가는 함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그러나 조타 불능의 함체는 파도가 미는 대로 흔들리는 사격 플랫폼이었고, 반대로 루이나 전함들은 자유롭게 침로를 골라 T자를 그으며 다가왔다. 09시 02분, 아이언사이드의 16인치탄 1발이 보탄의 전부 함교 구조물을 직격해 사령탑과 전방 사격 통제소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귄터 뤼첸스]]의 전사 시점에 대한 통설이 바로 이 명중탄으로, 이후 보탄에서는 함대 사령부 명의의 어떠한 명령도 발신되지 않았다. 같은 시각을 전후해 전부 주포탑 2기가 연달아 침묵했고, 개전 21분 만에 보탄의 조직적인 포격은 사실상 끝났다.
210
211그 뒤에 이어진 것은 해전이라기보다 처형에 가까웠다. 거리를 좁힌 두 전함은 직사에 가까운 근거리에서 일제사를 퍼부었고, 페어헤이븐(RNS Fairhaven)과 스톤헤이븐(RNS Stonehaven)도 양 옆에서 포격에 가담했다. 400발에 가까운 대구경탄이 보탄의 상부 구조물을 차례로 갈아엎었다. 마스트가 꺾이고 굴뚝이 무너졌으며, 포탑들은 하나씩 포신을 늘어뜨린 채 불탔다. 그러나 수선 하부의 방어 구획은 끝까지 버텨, 만신창이가 된 함체는 여전히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0시를 넘기며 리버티와 아이언사이드는 연료 부족으로 더는 해역에 머물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고, 베렌하르트는 포격 중지와 본대 귀환을 명령하며 마무리를 순양함에 맡겼다. 10시 25분, 스톤헤이븐이 근거리에서 어뢰 3발을 차례로 보탄의 양현에 꽂았다. 거의 같은 시각 함내에서는 생존 장교들의 지시로 자침용 폭약이 터지고 킹스턴 밸브가 열리고 있었다. 10시 39분, 보탄은 좌현으로 천천히 넘어가더니 함미부터 바다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미의 군함기는 내려지지 않았고, 기울어 가는 갑판 위에서 생존자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광경을 루이나 승조원들은 포성이 멎은 침묵 속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쪽이 침몰의 결정타였는가, 즉 어뢰인가 자침인가를 두고는 전후 수십 년간 논쟁이 이어졌으나, 훗날 심해 탐사로 확인된 선체 상태는 양쪽 모두에 근거를 주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배는 승조원들이 끝까지 싸운 뒤에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212
213침몰 해역의 바다에는 수백 명의 생존자가 떠 있었다. 스톤헤이븐과 구축함 1척이 접근해 현측에 밧줄을 내렸고, 기름과 파도 속에서 한 명씩 끌어올리는 구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10명째를 끌어올리던 무렵, 견시가 근거리에서 잠망경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보고했다. 전날부터 해역으로 전개 중이던 유보트들의 존재는 첩보로 확인된 상태였고, 정지한 순양함은 잠수함 앞에서 표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함장은 해군에서 가장 무거운 종류의 결단을 내렸다. 구조 중단, 즉시 이탈. 밧줄을 붙든 채 끌려가다 떨어져 나가는 생존자들을 뒤로하고 스톤헤이븐은 속력을 올렸다. 바다에 남겨진 이들 중 이후 독일 측 함정과 기상관측선이 추가로 건져낸 것은 5명뿐이었다. 보탄의 승조원 2,200여 명 중 최종 생존자는 115명. 리퍼블릭의 1,419명 위에 이번에는 2,000명이 얹힌 것이다. 구조 중단의 결정은 전후까지 논쟁거리로 남았으나, 리퍼블릭의 생존자가 3명이었던 전쟁에서 그 함장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14
215소식이 전해진 그날, 루이나 의회는 회기를 중단하고 베렌하르트의 전문 전문(全文)을 낭독했다. "1941년 5월 27일 10시 39분, 함대는 약속을 지켰다." 사흘 전 "귀항하지 않는다"던 그 전문의 대구였다. 거리에는 호외가 뿌려졌고, 리퍼블릭 승조원 유족들이 항구에 모여 바다를 향해 헌화하는 사진이 이튿날 모든 신문의 1면을 채웠다. 그러나 축포의 이면에서 해군 수뇌부의 결산은 훨씬 건조했다. 최신예 전함 하나를 잡기 위해 동원된 것은 주력함 7척과 항모 2척, 순양함과 구축함 수십 척, 그리고 나흘의 시간이었다. 그 나흘 동안 호위를 뜯긴 선단들이 대서양 곳곳에서 무방비로 항해했다는 사실, 그리고 결정타가 전함의 주포가 아니라 시속 130km 복엽기의 어뢰 한 발이었다는 사실은 각기 다른 방향의 교훈을 남겼다. 어쨌든 하나의 시대가 이날 끝났다. 독일의 대형 수상함이 호위 없이 대양을 활보하던 시대, 그리고 '위치 불명의 전함'이라는 세 글자가 루이나를 마비시키던 시대였다. 다만 그 관에 마지막 못이 박히기까지는, 아직 반년의 소모전이 남아 있었다.
174216=== 뤼첸스의 최후 (1941년 5월 27일) ===
175217=== 잔존 함대의 항구 봉쇄와 항공 소모전 (1941년 6월~8월) ===
176218=== 중순양함대의 마지막 출격 (1941년 9월~10월) ===
......